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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angju National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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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전통화가들: 호남과 서울
근대의 전통화가들: 호남과 서울
  • 기간 2019-09-27 ~ 2019-11-24
  • 장소 국립광주박물관 기획전시실
  • 내용 조선 시대 회화의 역사는 도읍인 ‘한양’을 중심으로 펼쳐졌습니다.
    개항 후 급격히 밀려든 근대 문명의 영향으로 전통회화가 변화할 때도
    그 변화의 중심지는 ‘경성’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회화의 역사는 ‘서울’을 무대로 전개되어 온 듯하지만,
    지방 미술의 흐름을 간과한다면 한국미술사의 전체상을 파악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전통회화’라면, 서울만큼 중요한 무대가 바로 ‘호남’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항 이후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서울에서 활동한 전통화가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晋,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그리고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의 작품을, 그들과 동년배인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미산米山 허형許瀅,
    그리고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의 호남 지역 활약상과 함께
    나란히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났지만, 호남과 서울, 두 지역으로 나뉘어 활동한 그들의 인생은
    의도치 않은 곳에서 교차하였고,
    닮은 듯 닮지 않은 저마다의 예술 세계를 형성하였습니다.

    전시는 채용신(1850년생)과 조석진(1853년생), 안중식(1861년생)과 허형(1862년생), 그리고 허백련(1891년생)과 김은호(1892년생),
    총 6인의 인생과 예술을 짝지어 살펴볼 수 있도록 총 3장으로 구성됩니다.

    1장 전통과 개화, 경계 위의 화가들: 채용신(1850~1941)과 조석진(1853~1920)

    조선은 1876년에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면서
    서구와 일본의 근대 문명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850년대에 태어난 채용신과 조석진은 개항 당시 이미 20대 후반의 청년으로,
    이미 전통사회의 관습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근대 문명과 미술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반포하고 황제의 지위에 오른 고종은
    제국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황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어진 제작을 추진하였는데, 이 때 주관화원이 바로 조석진과 채용신이었습니다.
    ‘근대’ 국가를 표방하는 대한제국의 ‘전통적’ 어진 제작에 함께 봉사하게 된
    조석진과 채용신은 전통과 개화, 그 경계 위에 선 화가들이었습니다.


    2장 화가들을 이끈 화가들: 안중식(1861~1919)과 허형(1862~1938)

    19세기 말 근대화된 사회 속에서 조선의 ‘서화’는 새로운 용어인 ‘미술美術’로 재정립되고,
    미술과 관련된 새로운 개념의 제도와 단체가 속속 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시간차를 두고 지방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안중식과 허형은 1860년대 초반에 태어난 동년배이지만,
    서울에서 활동한 안중식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가 집단인
    서화미술회, 서화협회 등을 이끌었고,
    호남에서 활동한 허형은 전통적 도제徒弟 교육을 이어가며
    지역의 화실 운림산방을 이끌었습니다.
    단체의 성격은 서로 달랐을지 몰라도, 다음 세대 화가 지망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며
    지역 예술 발전에 기여한 점은 함께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3장 개화기 새로운 무대 위의 화가들: 허백련(1891~1977)과 김은호(1892~1979)

    20세기 초 서화협회 등 미술단체들이 개별적으로 개최해 오던 미술전람회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鮮展)의 시작과 함께,
    미술가들의 주요 활동 무대로서 확고한 위상을 다지게 됩니다.
    원칙적으로 전국의 미술가들에 평등하게 출품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경성의 최신 화풍과 심사위원들의 심사 경향을 파악할 수 없었던
    지방 화가들에게 선전은 너무나 멀고 어려운 무대였을 것입니다.
    1890년대에 태어난 허백련과 김은호는 젊은 시절부터 함께 선전에 참가하여 왔지만,
    이내 전람회에 대한 입장을 서로 달리하며 호남과 서울로 나뉘어 활동하였고,
    서로 다른 예술 세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 전시 기간 중 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는
    특별전에서 모두 소개하지 못한
    국립광주박물관 소장 호남 출신 화가들의 전통회화가 함께 전시됩니다.

    * 전시 연계 행사 안내

    1. 연계 강연회
    - 일시 : 2019. 10. 2. (수) 16:00~18:00
    - 장소 : 국립광주박물관 대강당
    - 강사 : 이선옥 의재미술관장
    - 내용 : 조선 중기 해남 윤씨 일가부터 오지호, 기환기, 천경자 등의 서양화가에 이르기까지 호남 출신 미술가들의 이야기

    * 상기 내용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2. 전시 설명회(큐레이터와의 만남)

    - 일시 : 2019. 10. 30. (수) 16:30~17:30
    - 장소 : 국립광주박물관 기획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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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주요 도자 명품전 - 흑백의 향연
중국 자주요 도자 명품전 - 흑백의 향연
  • 기간 2019-05-28 ~ 2019-08-18
  • 장소 국립광주박물관 기획전시실
  • 주관 국립광주박물관
  • 내용 자주요(磁州窯)는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한단시[邯鄲市] 츠현[磁縣]에 위치한 도자기 가마로, 남북조시대부터 오늘날까지도 도자기를 만드는 중국 북방 최대의 민간 가마이다. 거친 태토 위에 하얀 화장토를 발라 표면을 깨끗이 단장하는 ‘화장토 도자기’가 대표적인 생산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중국 1급 유물(*우리나라의 국보와 같음) 13점을 포함하여 중국 자주요박물관의 대표 소장품 117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모두 4부로 구성하였다. 1부 ‘가마에 불을 지피다-고대의 자주요’에서는 자주요에서 도자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남북조시대부터, 자주요의 특징인 화장토 도자의 시원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수·당대까지의 도자를 살펴본다. 자주요에서는 남북조시대 말기인 동위(東魏, 534~550)때부터 청자를 생산하였다. 수·당대가 되면 유약 색이 다양해지고, 표면에 문양을 찍어 나타내는 등 그릇 표면이 다채로워지기 시작한다.

    2부는 ‘흑백의 절정-송·금·원의 자주요’라는 주제로, 자주요 도자가 그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며 발전한 시기인 송·금·원대 자주요 도자의 특징을 기법별로 살펴본다. 중국 도자는 북송(北宋, 960~1127) 시기부터 크게 발전하였는데, 자주요 도자 역시 이 시기에 가장 융성하였다. 자주요 도자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표면에 화장토를 발라 단장하는 ‘백토분장’이다. 도자기 표면을 하얗고 깨끗하게 단장하면서 여기에 무늬를 새기는 다양한 기법이 나타났다. 나아가 하얀 바탕에 검은 안료로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려넣는 ‘백지흑화(白地黑畵)’ 도자기가 대표적인 생산품으로 출현하였고, 그림 뿐만 아니라 시를 적어넣는 등 표면 장식이 화려하게 발전하였다.

    3부 ‘민중의 꿈-도자기 베개’에서는 자주요의 특징적인 기종 중 하나인 도자기 베개를 살펴본다. 자주요에서는 중국 전 지역에서 가장 많은 도자기 베개를 만들었다. 도자기 베개를 베고 꾼 꿈 이야기인 ‘한단의 꿈’이라는 옛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단 지역에 위치한 자주요는 도자기 베개와 깊은 관련을 가진 곳이었다. 자주요의 장인들은 대대로 도자기 베개를 만들며 생업을 이어나갔다. 도자기 베개 아랫면에 찍힌 ‘장가조(張家造:장씨 집안이 만듦)’ ‘이가조(李家造:이씨 집안이 만듦)’ 등의 도장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도자기 베개는 민중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는 기물이었다.

    4부는 ‘은은한 여운-명·청·20세기의 자주요’ 라는 주제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가면서도 전통을 유지하는 자주요 도자의 변화상을 소개한다. 명(明, 1368~1644) 때에는 자주요 도자기 생산의 중심 가마가 팽성진 근처로 이동하면서 연한 갈색으로 그림을 그린 도자기가 유행한다. 청(淸, 1616~1912)에 들어서면 중국 남부 경덕진의 청화백자가 유행하면서 자주요의 장인들도 코발트 안료를 사용한 청화백자의 생산에 뛰어들게 된다. 새로운 재료와 미감을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검은색과 갈색 안료를 함께 사용하면서 자주요만의 독특한 미감을 보여준다.

    전시의 후반부에서는 자주요 도자의 오늘날을 만날 수 있어 주목된다. 자주요 도자의 제작 기법을 보여주는 영상과 함께, 현대 자주요에서 만들어진 현대 재현품과 재료를 함께 소개한다. 자주요의 전통은 과거의 영광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이 전시에서는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자주요 도자를 함께 소개한다. 원대의 무역선인 신안선에는 2만여점이 넘는 중국 도자기가 상품으로 실려 있었다. 이중에는 자주요 도자도 포함되어 있어, 원대 자주요 도자가 중국 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수출되는 무역품으로도 선호되고 있었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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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00년, 역사를 바꾼 10장면
대한민국 100년, 역사를 바꾼 10장면
  • 기간 2019-02-28 ~ 2019-12-15
  • 장소 국립광주박물관 전시관 1층 로비
  • 주관 국립광주박물관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내용 전시명칭 :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전시
    대한민국 100년, 역사를 바꾼 10장면
    전시기간 : (5차 전시) 2019. 11. 11. ~ 12. 15.
    전시장소 : 국립광주박물관 전시관 1층 로비
    주 최 : 국립광주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문 의 : 062-570-7034

    국립광주박물관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공동으로 개최하는 특별전 '대한민국 100년, 역사를 바꾼 10장면'을 2월부터 12월까지 실시한다.

    박물관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사건으로 민중이 역사의 주인으로 나섰던 △ 3.1운동, △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 독립운동, △ 광주학생독립운동, △ 광복, △ 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 △ 6.25 전쟁, △ 4.19 혁명, △ 5.18 광주민주화운동, △ 87년 6월 민주항쟁과 촛불 등을 꼽았다. 전시는 사건이 발생한 순으로 2개의 주제를 묶어 열리며, 주제별로 생동감 있는 사진과 관련 자료 10점씩을 공개한다.

    현재 3.1운동부터 4.19 혁명까지 살펴 보았고 △ 5.18 광주민주화운동, △ 87년 6월 민주항쟁과 촛불을 주제로 한 마지막 전시를 11월 11일부터 12월 15일까지 개최한다.

    제 9장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는 한국 현대사 최대의 민주화 운동인 5.18에 대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요 사건을 소개한다. 또한 치열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전시품과 함께 보여줌으로서 5.18의 아픔과 민주화에 대한 염원을 전달한다.

    제 10장면 ‘6.10 민주 항쟁과 촛불’에서는 민주국가를 향한 국민들의 저항이 폭발한 1987년 6.10 민주 항쟁의 경과를 살펴보고, 그 결실인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까지 흐름을 살펴본다.
    아울러 1987년 6.10 민주 항쟁으로 얻어낸 미완의 민주화가 2016년 광장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완성되었던 순간도 함께 살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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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금용 일섭 - 근대 부처를 만들다>
특별전 <금용 일섭 - 근대 부처를 만들다>
  • 기간 2018-05-18 ~ 2018-07-01
  • 내용 금용(金蓉) 일섭(日燮)은 호남 출신의 금어(金魚)*로,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활동하며 전국의 사찰에 수많은 불상, 불화, 단청을 남긴 근대 불교미술의 선구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섭의 대표작인 불상, 불화와 함께 작업에 사용한 밑그림과 불상 틀 등을 소개함으로서, 일섭 스님의 삶과 예술세계를 더듬어본다. (*금어: 불상, 불화, 단청 등 불교미술 전반에 능한 승려)

    전시는 모두 4부로 구성하였다. 1부 ‘전통에서 배우다’에서는 조선 말기에 활약했던 스승들과 함께 만든 일섭의 초기 작품을 소개한다. 일섭은 1918년 처음 불화를 그리기 시작한 후, 그림을 배우기 위해 전국을 돌며 스승을 찾아 나섰다. 평생의 스승이 된 보응 문성(1867-1954)을 만나 제자가 된 후에도 여러 선배 화원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불상, 불화, 단청 등 불교미술의 모든 분야를 전수받았다.

    2부는 ‘근대 불교미술계를 이끌다’로, 스승에게서 독립하여 불교미술품을 조성하기 시작한 일섭이 근대 불교미술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의 중요한 사건들을 조명하였다. 일섭은 1935년 김제 금산사 미륵불 조성 입찰에 참여하고 1938년 조선불교 총본산 태고사 대웅전(현 서울 조계사 대웅전) 불화를 조성하는 등 불과 30대 중반에 대규모 불사를 주도하는 반열에 올랐다.

    3부 ‘대금어의 길’에서는 일섭이 40~50대에 조성한 대작들을 소개한다. 이 시기 일섭은 많은 후배와 제자들을 이끌고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였다. 높이 4m 이상의 대형 후불도(後佛圖)*를 조성하거나, 한 사찰의 불상?불화?단청을 모두 조성하는 등, 대규모 불사를 행하는 종합 예술가의 면모를 보인다. (*후불도: 법당의 불상을 모셔 놓은 뒤쪽에 걸어 놓는 불화)

    4부는 ‘장인에서 예술가로’ 라는 주제로, 근대 불교미술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제자 양성에 힘쓴 일섭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만년의 일섭은 불교미술단체 설립과 공모전 출품, 저서 출간 등 불교미술의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1971년에는 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에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는 제자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는데,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일섭문도회’라는 이름으로 불교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시에서는 현대 불교미술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몇몇 작품도 함께 소개한다. 불교적 도상에 충실하면서도 재료와 기법을 달리한 웹툰 작가의 팔상도, 대리석 조각가의 불상, 철 조각가의 사천왕상 등 현대 작가들의 기발한 불교미술 작품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박물관 연구사는 “일섭이 추구했던 불교미술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으며, “종교를 떠나 전통 시대와 현대 사이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근대인의 예술작품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7월 1일까지이고 무료관람이다.

    아울러 전시를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사)동악미술사학회(이사장 정우택)와 공동으로 5월 18일 오후 3시부터 국립광주박물관 대강당에서 개최한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송광사성보박물관 신은영의 “금용 일섭의 『연보』와 불교예술운동”이라는 주제의 기조발표를 시작으로, 근대 불화?불상과 일섭의 예술활동을 조망한 최엽(동국대), 김현중(불교중앙박물관), 최선일(문화재청), 김영희(국립광주박물관)의 주제발표와 김승희 국립전주박물관장을 좌장으로 한 종합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 학술대회는 관심 있는 일반인들의 참여도 가능하다.